요즘의 표절 논란을 보고 학교 선배인 민태기 박사님께서 쓴 글입니다. 선배님보다 어린 제가 학교에 왔는데 반성하게 되네요. 제 힘으로 어떻게 하기 어려운 '반듯한'학위자보다 '실적 좋은' 학위자를 원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선배가 기억하는 칵테일 사랑 마저도 가짜 가수의 립싱크 논란이 있었던 기억이...
기억의 습작을 들을때면 36동 지하 연구실에서 홀로 편미분 방정식을 풀던 그때가 늘 떠오른다.
94년 봄, 나는 석사연구를 시작했는데, 93년에 스탠포드 교수들이 출판하여 전세계적으로 사용되던 대학원 교재와 내가 구한 답이 도무지 일치하지 않았고 그때부터 기약없는 밤샘이 시작되었다. 밥을 먹을때 숟가락에 방정식이 보이고 꿈에서는 방정식을 풀고 있는 내 모습이 나왔다. 이러기를 1년, 마침내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밝혔다.
논문을 쓸때 새로운 내용을 쓰는 것보다 누군가의 내용이 잘못됐다고 쓰는 것이 더 힘들다. 특히 그들이 세계적인 석학일때는 훨씬 더하다. 내가 페이퍼를 쓰기 시작하자 지도교수님들은 인용논문들의 원문에 내가 인용한 부분을 형광펜으로 표시해서 가져오라고 했다. 인용논문이 다시 인용하
...면 그 논문을 다시 찾았다. 지금처럼 인터넷에서 PDF를 다운 받던 시절도 아니고, 전세계의 도서관을 뒤지고 때로는 NASA에 보관된 마이크로필름을 뒤졌다. 이렇게 반드시 원 논문의 내용이 확인된 후에 난 인용문을 달수 있었고, 다시 거기에 반드시 나의 생각을 달았다. 이러기를 수십번을 반복해서 논문을 쓰는데 다시 1년이 걸렸고, 이것을 SCI 저널에 투고해서 심사를 받는데 추가로 1년이 걸려 이 논문들은 97년에 출판되었다.
20년 가까이 지난 일들이지만, 그때 이미 학부생 레포트 쓰듯이 학위 논문이 남발되면서 논문을 찍어 내듯이 쓰는 분들을 보았다. 하지만 난 아직 한국 사회가 미성숙되어서 그렇지 내 세대가 교수가 되고 학계에 진출하면 우리도 뭔가 반듯한 학위자들을 배출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작금의 모습은 우리 학계의 '수준'을 말해 주는듯 하여 너무 속상하고, 공대 지하실에서 곰팡이 냄새 맡으며 처절하게 답을 찾아 헤매던 나의 젊음에 대한 모욕이고 조롱으로 느껴진다.
그때 내 나이 24살, 햇빛도 없는 지하 공간에서는 유일한 벗 라디오에서 기억의 습작과 칵테일 사랑이 늘 흘러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