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시회/학회는 처음 참석해 보았는데 세미나 중심의 학회보다 볼거리 배울거리가 풍부하고 특히 가정용 열원 설비 쪽은 내용이 충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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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기 박사님이 facebook에 올리신 글을 공유합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분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1904년 8월 12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제3회 세계 수학 학술 회의에서 당시 29세의 하노버 기술대학 교수였던 Prandtl이 유체역학에 관한 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단 10분짜리 발표였던 이 짧은 논문은 당시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공기저항을 구하는 획기적인 수학적 방법이었다. 수학적 이론 배경 없이 인류 최초의 비행기가 탄생한지 1년만의 일이었고, 발표직후 물리학자 Sommerfeld가 다가와 '평생 본 가장 아름다운 논문'이라고 극찬할만큼 센세이션이었다. 이 한편의 논문으로부터 현대 유체역학이 시작하였다.

1875년생인 Prandtl은 19세에 뮌...헨기술대학에 입학하여 박사학위를 받고자 하였지만, 당시 이 대학은 박사학위를 수여할 수 없었기에, 그의 논문은 뮌헨대학 Graetz 교수(열전달 Graetz problem의 그 Graetz)의 심사로 1901년 통과되었다. 이때 하노버 기술대학의 수학교수 Runge( Runge-Kutta method의 그 Runge)의 초빙으로 26세에 당시 독일 최연소 교수가 되었다. Prandtl은 Runge 교수 가족과 수시로 식사하는 친밀한 관계였는데,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이자 베이스 가수였던 그는 대학시절 동아리로 합창단을 했는데, 음악애호가였던 Runge 가족과 코드가 맞아 어떨때는 서로 성부를 나누어 마태수난곡 전곡을 부르기도 했다.

1904년 비록 기술대학 교수였지만 그의 명성이 차차 알려지자, 당시 응용수학과 응용물리학의 연구를 개척하려던 괴팅엔 대학에서 그를 초빙하려고 했다. 명문대학에서의 오퍼였지만, 처음에는 학과장 Runge 교수의 만류도 있고 해서 다소 주저하였다가, 결국 괴팅엔으로 옮기기로 결심하였고, 괴팅엔에서는 Runge 교수도 패키지로 데려갔다. 괴팅엔으로 옮기는 와중에 그해 8월 하이델베르크에서 이 논문이 발표된 것이다. 이후 그의 유체역학의 직관은 괴팅엔 대학의 젊은 영재들과 결합하여 2차대전까지 불후의 연구성과들이 탄생하게 된다.

20년대 이후의 나치집권은 Prandtl에게 많은 시련을 안겨주었다. 제자로 받아 달라며 헝가리에서 찾아왔던 수제자 Karman은 결국 압력을 못견디고 1929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또한 저명한 수학자인 Courant (Runge의 딸과 결혼) 역시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가장 큰 충격은 제자들이 친나치와 반나치로 나누어지고, 심지어 어떤 제자들은 나치와의 거래를 통해 그를 협박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 상황을 복잡하게 보여주는 인물이 Nikuradse였는데, 스파이 혐의로 해고하라는 정부의 명령에 완강히 거부하던 Prandtl이었지만, 그가 수년전부터 나치 비밀요원들과 내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연구소 내부는 더욱 혼란에 빠졌고, 결국 그를 해고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를 아꼈던 마음에 다른 대학의 교수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1938년 Prandtl은 미국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여 절친이었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Talyor와 미국에 정착해 있던 Karman을 만난다. 세계의 석학들이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기에는 당시의 세계정세는 절박했고, 이 학회의 연회장은 나치의 침략정책을 성토하는 소리로 채워졌다. 비록 Prandtl은 나치를 싫어했지만 독일을 사랑했기에 조국을 변호하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고, 제자와 친구들 사이에 대립해야 하는 이 상황을 안타까워 했다. 이 무렵, 하이젠베르크 역시 나치에 의해 신분이 위태롭게 되었는데, 어느 날 Prandtl은 만찬에서 만난 히틀러에게 그를 변호하여 보호해 주었다. 하지만 1939년 독일의 침공으로 2차대전이 시작하고, Prandlt은 이러한 상황에 더욱 괴로워하게 된다.

1945년 4월 8일, 괴팅엔이 점령당하고 그의 연구실은 군인들에 의해 점령되어 출입이 금지되고 일부 연구장비들은 점령군들이 뜯어 가기도 한다. 5월 14일 미국에서 거물이 된 제자 Karman이 괴팅엔에 와서 전쟁 중 진행된 연구성과들을 연합국에 제출하는 조건으로 연구소를 재가동하게 해 주었다. 이후 연구소의 성과를 탐내는 수많은 연합국 연구자들의 방문으로 Prandtl은 스스로가 박물관 가이드라고 여길 정도였는데, 전승국들의 유체역학적 수준이 의외로 매우 낮음을 알게 되자 놀라워하고 또 분개했다. 하루 하루 배급으로 땔감도 구하기 힘든 이때, 쫓겨난 Nikuradse가 엄청난 양의 목재들을 운반해서 Prandtl의 집앞에 쌓아두고 갔다. Prandtl의 학생들은 이를 톱으로 잘라 땔감을 만들어 당분간 풍족하게 썼다. 1947년 미국으로 망명해 역시 거물이 된 Courant가 괴팅엔을 방문하였다. 그는 2차대전시 연합국 공습계획에서 괴팅엔이 제외되었던 것은 오로지 Karman의 노력이었다고 알려주었다.

Prandtl은 1955년 사망하였다. 그의 1904년 논문은 물리학에서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같은 임팩트를 가지고 있고, 그의 독일에서 학문적 위치는 Max Planck와 비교될 정도였지만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다.

* 1929년 미국으로 망명한 Karman은 캘리포니아 Caltech에서 JPL(제트추진연구소)를 만들어 전쟁 후 NASA를 이끌게 된다.

* 1933년 미국으로 망명한 Courant는 뉴욕에서 Courant Institute of Mathematical Sciences를 만들었는데, 이 연구소는 응용수학계의 메카가 되어 나중에 금융수학을 이끈다.

* 괴팅엔에서 Prandtl의 첫제자는 Blasius였는데, 그는 Prandtl 방정식의 해를 구하여 발표함으로써 유체역학 교과서에 영원히 이름을 남겼다. 그는 원래 수학전공이었다가 수학의 추상성에 염증을 느끼고 뭔가 좀 실제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 물리학으로 바꾸었다가 당시 막 부임한 Prandtl의 지도를 받게 된 것이다. 이후 몇년간 역사에 남을 만한 논문을 발표했지만, Prandtl은 철학과 인문학에 빠져있는 그에게 '자네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네'라는 말했고 얼마 후 Blasius는 Prandtl과 유체역학을 떠나 조그만 대학에서 숨어 살듯이 teaching만 했다. 그의 이름은 모든 유체역학 교과서에 등장하지만, Prandtl의 전기에는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


일본, 가라츠 역 앞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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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오카, 후쿠오카 타워 전망대에서.


LH 녹색 기술관 옥상, 추적식 태양광 발전 시스템.
사진을 찍고 계신 김중경 교수님, 그리고 멀리 이희준, 정태용, 한화택 교수님 모습이 보입니다.



최박사님 사무실은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듯 힙니다.
그냥 한국 어디 실험실 같은 분위기네요.  


2012년 2월 3일 자연대에서 바라본 명원 민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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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자리를 옮기고 처음 해보는 과목, 그렇지만 지금까지 강의에 대해 갖고 있었던 생각을 잔뜩 넣어 보고 싶어서 나름 열심히 준비했답니다. 처음 시작은 열역학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유들을 생각해보고 어떻게 하면 이 과목을 공부하고 싶게 만들까하는 부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몸짱이 되고 싶어서 운동을 하듯 꿈을 이루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겠죠. 이 공부를 해서 얻어지는 게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낀다면 더욱 의욕을 가져줄 거구요.

일단은 친숙한 것부터 접근하는 공략법을 택했습니다. Free body diagram에 익숙해지기 까지 애를 먹는 고체역학, 동역학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Control volume에 익숙해져야 하고 수학적으로 어렵기까지한 유체역학에 비해서는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것들을 가장 많이 써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과목이거든요. 대신 이제부터는 이상기체뿐 아니라 증기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야되고 밀폐시스템이 아닌 개방시스템에 대해서도 따져야 하며 엔트로피가 값이 얼마인지도 알아야 하는 때까 된 거죠.


저도 물론 학부 때 여러분처럼 열역학을 배웠습니다. 열역학은 서울대학교에 이우일 교수님께 응용열역학은 김민수 교수님께 배웠죠. 두분 다 너무 좋은 강의를 해 주셨고 당시에는 강의 평가가 없었지만 지금 제가 수강했다고 하면 모두 5점 만점에 5점 '매우 그렇다'로 밀어버릴 것 같습니다.
개그맨 전유성 씨를 연상시키는 목소리에 뜨거운 열정과 가끔은 소름이 끼칠 정도의 총기가 느껴지던 이우일 교수님의 열역학 수업, 물 셀틈 없이 잘 짜여진 완벽한 구조물을 보는 것 같은 김민수 교수님의 친절했던 열역학 수업을 제가 똑같이 재현하지는 못하더라도 제 수업에도 어느 정도 녹아 있을 것 같습니다. 열역학 1법칙을 이우일 교수님은 돈에 비유하여 열은 입금, 일은 출금 그리고 에너지는 잔고로 설명하셨고 김민수 교수님은 밥을 먹었으면 일을 하거나 살이 찔 것이라고 설명을 하셨는데 여러분은 어느 쪽이 이해하기 쉬우신가요?
저도 물론 교과서의 틀을 흔들지는 않겠지만 많이 생각하고 예쁜 그림을 찾고 깔끔하게 보여드리도록 노력합니다. '내가 이 일을 좋아하고 매일 매일 즐겁게 한다면 지금은 전혀 아닐지라도 언젠가 이 세상에서 이 일을 가장 잘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라는 말을 믿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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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소는 오래전 부터 연구해 왔지만 앞으로도 연구할 것들이 많다는 독일 할머니의 강연입니다.


유럽의 주요 공대 중에 하나인 네덜란드의 델프트 공대에서 열린 국제 전달현상학회에 다녀왔습니다. 델프트에는 구교회, 신교회의 2개의 교회가 유명하다고 하네요. 사진 속의 구교회는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고 신교회에는 네덜란드 왕가가 묻힌다고 합니다. 모처럼 치열한 연구 현장을 보고 오니 저도 열심히 연구를 해 보고 싶은 의욕이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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